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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學雜論

최인훈의 ‘광장’


2018.08.17. 






“쉿! 누가 들을라.”

긴장 섞인 낮은 목소리로 주변을 둘러보며 그렇게 주의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신문? 얌마 그 기사의 행간을 읽을 줄 알아야지”

보도검열 때문에 기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가미가제로 출전 훈련하던 일제 공군 장교 출신의 나의 중학교 교장선생님. 해방 후 당시 30년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그로부터 일제의 가미가제 정신으로 학업정진과 정신무장을 강요받던 시절이 있었다. 

북의 ‘공산당괴뢰도당’은 얼굴이 뻘건 도깨비로 알던 시절도 있었다.


우리에겐 진정한 광장이 없었다. 안온한 밀실도 보장 되지 않았다. 국가권력의 무자비한 군홧발이 오로지 한 방향, 반공과 개발 즉 ‘민족중흥’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향해 있었다. 그 누구도 이 ‘민족중흥의 사명’에 어깃장을 놓는 놈이 있으면 간단하게 군홧발로 짓이겨 놓으면 끝이었다. 요즘 말로 ‘인권’이니 ‘사회적 약자’ 같은 말은 사전에만 있는 단어였다.

반공 이데올로기는 사상의 밀실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광장의 맹아는 커녕, 빨간놈은 무조건 쳐 죽여야 한다는 집단의식만 팽배했다.

‘개발’이라는 놈은 천민자본과 눈이 맞아 ‘나만 배부르면 끝’을 외쳤다. “갑질? 할 수 있는 자리에 넌 서 봤니?”가 상식이고, 물신(物神)이 나서면 죽은 사람도 데려 온다는 지경까지 가버렸다. 비좁은 ‘출세의 사다리’는 서로를 아귀다툼으로 몰아대고 노동자가 죽어나가든, 이웃이 죽든, 이 땅이, 우리 자연이 신음을 앓든 무조건 ‘나만 아니면 돼!’를 외치는 극단적 이기심이 지배하는 세상을 향하게 했다.


http://somgle.tistory.com/583


해방 후 71년이 지난 2016년 가을, 우리는 극적인 ‘광장’을 만들었다. 광장을 제대로 경험한 우리는 축복받은 세대이다. 정권이 바뀌었고, 공고한 평화체제가 논의 중이다. 중요한 전환점이 분명하다. 이것으로 반공 이데올로기로 인해 절반의 눈으로 살아 왔던 과거는 많이 해소 될 것이다. 걱정은 아직 팔팔하게 살아남아 기성을 부리고 있는 천민자본, 그리고 이기심이라는 이데올로기화된 패러다임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의 사회 경제적 사고의 틀이다. 세상은 기하급수로 변하고 있는데...


역사는 발전하는가? 이 책은 내 나이와 비슷하다. 20살 때 읽을 때 느꼈던 암울한 과거, 현재, 미래가 근 40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보다 많이 홀가분한 느낌이다. 그래! 역사는 발전한다. 다만 그 시대를 산 명준과 은혜라는 이름의 또 다른 우리가 있을 뿐. 


독서토론모임 <광장>에서 발표한 독후감(2018.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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