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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學雜論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2018.07.10.








거장 '네루다'라는 논픽션의 시인을 끌어들이고 픽션의 우편배달부 '마리오'를 무대에 세워 놓고 안토니오 스카르메타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을까? 

소설에는 그 스토리를 드라마틱하게 끌어가려는 잘 짜인 장치가 있게 마련이다. 이 소설에서는 픽션과 논픽션의 결합-상상을 구체적 현실과 섞고 서로 교감하도록 함으로써 문학적 설득력을 갖추려는 장치로 ‘네루다’는 픽션과 논픽션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http://bonobo007.tistory.com/270


마리오와 베아트리스의 사랑 이야기만으로는 시대적 배경을 특정하기 어렵다. 그건 춘향이의 다른 이야기일 수도, 로미오의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다. 사랑을 노래하고, 민중을 이야기한 칠레의 시인이자 혁명가 ‘네루다’가 등장하면서 작가가 일일이 내러티브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적 공간적 문화적 분위기를 모두 획득하고 있다.  

특히 두 가지 지점에서 탁월한데 첫 번째는 성적 묘사에서의 네루다의 업적을 그대로 이어 받기가 참으로 용이했고 두 번째는 역사적 반동의 시간 그 생채기를 드러내는데 아주 유용했다는 점이다.


그러한 장치 속에 무기력한 주인공 마리오는 ‘네루다’에게서 사랑을 표현하는 메타포를 배우고, 네루다를 '큰바위 얼굴'로 내재화 하며 성장하고 있었다. 그를 통해 개혁과 반동의 시간 속에서 차츰 자각해 나가는 민중과 칠레의 반역사적 시간을 내러티브하고 있다. 


그런데 그 자각이라는 게 피의 혁명을 노래하거나 대단한 이념을 표방하는 것이 아니다. 필이 꽂힌 여인에게 사랑과 애무를 갈구하고 자식 놓고 그 자식을 돌보는 소소한 행복, 폭좁은 공동체 속에서 조금은 게으르게 지키고 싶은 생존과 소심한 자존심, 그러다 자신과 ‘네루다’의 소중한 관계를 끝장내려는 반동의 무력에 우체부 모자 제대로 한 번 쓰고 전보 배달이라는 자신이 맡은 평상시 임무를 수행하려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소심한 대항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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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 내내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오버랩 되었다. 뚜렷한 이념적 맥락 없이 어느날 갑자기 빨치산이 되어버린 민초들의 기억 속에서 마을과 동내 사람들에 대한 그림 같은 묘사를 끄집어내는 능력과 촉감 질감으로 생생하게 전하는 성애의 장면이 마리오와 베아트리스가 나누는 그것과 그리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 시대 아픔의 크기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독서토론모임 <광장>에서 발표한 독후감(2018.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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